고성 아야진해변
12/30
아야진해변길 초입에 있는 까사 델 아야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12시 영화를 보기로 했던 터라 잠시만 앉아있다 나올 요량이었다.
숙소 코 앞에 있는 데도 매번 지나치기만 하다가 별 기대없이 들어선 곳. 카페 문을 여니 아주 따뜻한 햇살이 가득 찬 아담한 공간이 우릴 맞이했다.
한 쪽 벽면을 차지한 책장, 잔잔한 재즈 선율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투명한 유리창 옆에는 바깥 추위를 콧방귀 뀌듯 싱그러운 초록색 식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가 들어온 문 옆 볕이 따사한 곳에는 두툼한 담요가 깔려있었는데 이 집 강아지의 보금자리였다. 까사 델 아야로 걸어오면서 왠 강아지가 해변길 초입 도로를 헤매고 있길래 아이고 저러다 다치겠다 걱정했는데, 카페를 떠날 때 쯤 보니 그 강아지가 담요 위에 앉아있더라. 보살핌을 받는 강아지였구나...다행인 한편 자기 강아지가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에서 거리낌없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아찔할까 싶었다.
예매한 영화때문에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루프탑에 올라가보고 싶었다. 오늘 부로 다시 날이 따뜻해졌는데 (어제만 해도 강풍이...집을 뚫고 들어올 기세였다) 바람이 없어 오랜만에 잔잔해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새파란 바다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사실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바다다. 일절의 교감을 용납하지 않는 바다. 뚫어지게 쳐다 봄으로써 하나라도 뭔가 얻어내고 싶지만 아랑곳 않고 파도를 만들어내는 일에 열중하는, 그래서 매번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곳. 바다를 볼 때면 정화됨을 느꼈다. 바다의 움직임에 몰입하다 보면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얼룩이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이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바다로부터 얻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 쳐다보고 또 보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때까지 내 눈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곤 했다. 숙소 코 앞이 아야진해변이라 일주일 내내 원없이 바다를 바라보니 더할 나위 없다. 우리는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을 반복하며 가벼운 한 숨을 내쉬었다. 이런 우리의 바람은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적어도 이 공간과 시간에서 만큼은 그것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